◈ 이야기공간 ◈/인생이야기

이름이 없어서 좋은 옷

떠나는길(허호녕) 2010. 1. 18. 12:00

저에게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둘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라 특히 옷은 1년 이상을 입지도 못하고

특히 작은애는 너무 건강해서^^; 봄에 입은 옷을 가을에 입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친척집이나 같은 동료 선생님들 자제분들 옷도 얻어 입히기도 합니다.

요즘 옷들이 예전처럼 헤어져서 못 입는게 아니라

작아서 못 입거나 또는 유행에 뒤떨어져서 안 입는 옷들이 대부분이라서요.

다들 아시죠?

그리고 또 이렇게 얻은 옷들이랑 제가 직접 구입한 옷등이 시간이 지나 작아져서 못입게 되면

괜찮은 것만 골라서 **이네 집으로 보냅니다.

 

** 이는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옆 학교 아이인데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과 둘만 사는

기초 수급 가정으로 아시는 분이 연결을 해주셨습니다.

6개월전부터 우리 아이들 옷을 물려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때쯤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오후에 제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올일이 생겼다고  온김에 인사드린다고..

잠시 얼굴 뵙고 가고 싶다고 ...

괜찮다고 했는데도 굳이 인사를 드린다고 하기에 

그럼 날도 추운데 집으로 오시라 했더니

그건 폐를 끼치는거라 싫다고 하시면서 잠시 아파트 후문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남김에 주려고 지난번에 챙겨주고 미처 챙겨주지 못했던

아이들 옷장에 있던 몇가지 옷들이랑 작아진 신발하나를 종이가방에 챙겨서

바로 아파트 뒷문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미 기다리고 있었던지 후문에 서 계시더군요.

우리 아이들이 입었던 옷, 낯익은 옷을 입은 ** 이와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추운데 뭐하러 오세요, 그냥 전화로 해도 되는데."

"잠시 인사드리러. "

그러시면서 까만 비닐봉투를 내미셨습니다.

귤이라고 하면서 드시라고...

잘 먹겠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에게 어머니께서

"니, 성생님한테, 인사드리레이"

그러자 ** 이가 저에게 꾸벅인사를 했습니다.

 

**이는 정말 표정이 밝은 녀석입니다.  거기다가 건강하기까지 해서

우리집 작은애 옷이 정말 잘 맞습니다^^ 허리 굵고 다리 짧고^^;

그런 그 녀석이 오늘 그랬습니다.

"성생님예, 성생님 집 형들 옷은 정말 좋습니더예"

 

그 말 듣자마자 순간 저는 응? 그러면서 의아해했습니다.

물론 나누어준 옷중에 비싼 옷들도 몇개 있지만 그냥 평범한 중저가 옷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뜸 하는 얘기가

"성생님이 준 옷하고 신발에는 이름이 한개도 안 적혀 있어서 정말 좋습니더예!"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제 머리속에서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무슨의미인지..

제 표정이 멍했는지,  옆에 계신 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야가 어릴부터  옷을 좀 얻어 입혔는데

 엄마들이 애들 옷 이자뿐다고 전부다 옷에다가 자기 애들 이름 적어놔서

야가 좀 싫어했습니더"

그러셨습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군요.

이 아이가 한 말이.. 이름이 없어서 좋다는 뜻을요...

 

마음 한구석이 참 알싸했습니다.

어릴때부터 다른 사람 이름이 적힌 옷만 늘 입어야 했던 그 아이가

비록 본디부터 자기것은 아니지만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옷을 얻어서 입었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께 가지고 온 작은 가방을 건네드리고

날씨가 춥다면서 얼른 가시라고 재촉했습니다.

가방은 아이가 받아서 챙기면서 안을 들여다보더라구요

그러면서 정말 좋아했습니다.

아마 옷 안쪽의 상표에 이름이 안적혀있고

신발 뒤꿈치에도 이름이 안적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알겠지요?..^^

 

사실 저도 교사로서 아이들 옷 잃어버릴까봐

 옷(특히 태권도장 외투-이거 섞이면 골치아픕니다)이랑 가방, 신발에

자기  이름 꼭꼭 적어라고 외치지만

진작 우리집 애들 옷애는 한개^^도 안써주는 빵점 엄마였는데

저의 그런 빵점태도가 한 아이에게는 빵점보다는 더 큰 행복을 준것 같습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로 복잡했습니다......

 (글:김효정)

 

촬영지:다대포 솔섬/떠나는길(허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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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저의 동문카페에 올려진 후배의 이야기인데 따스한 이야기가

우리 동문카페안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아까운 글이라 생각되어서 퍼왔습니다.

이런 후배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 많은 한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요녀석 제블에도 자주 보이는 녀석입니다.

'작은샘'이라는 닉을 사용하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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