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아름답다→일몰

외로운 실종속에서...

떠나는길(허호녕) 2008. 9. 30. 22:12

외로움 1 (외로운 실종 속에서.. )
                          -이외수-

1.힘들고 눈물겨운 세상, 나는 오늘도 방황 하나로 저물녘에 닿습니다.

 

2.밖에는 비가 내리고 술집 안은 텅 비어 있는데, 우리들의 의식 깊숙이에는 외로움의 터널이 길게 뚫리고,

  우리들은 함께 술잔들을 주고 받으며 그 터널 속을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3.기다리는 자(者)는, 기다릴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자는 행복하다.

 

4.기다림이 길면 길수록 만남은 우리를 행복 속에 몰아 넣는다. 기다림이 진실하면 진실할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쓰라리고 아픈 형벌이 된다.

 

5.해가 지면서 문득 사람이라는 것이 습관처럼 그리워져 왔다.

   그립다는 것도 일종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배고픔처럼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6.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잘 사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잎 다진 나무들이 낮게 속삭이는 소리들.

 

7.누에가 고치 속에 갗혀서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는 일과 나무가 겨울 속에 갇혀서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는 일이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8.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워져 왔다.

  사람들 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나와 섞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9.당신은 들리는가. 비는 당신이 고등학교 시절 한 번도 말 붙이지 못하고 애태우던 여자애의 음성,

  아니면 당신이 밤을 새워 쓰던 편지의 활자들이 이제야 다시 그대 주변으로 돌아와 떨어지는 소리다.

  소리는 곧 아픔이다. 양철 지붕 가득히 흩어지는 불면의 낱말,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이다.

  당신은 비 오는 날의 저문 거리에서 한 사람의 낙오된 유목민처럼 아주 외로운 사람이 되어 오래도록 우산도 없이 홀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10.방황하거나 반 고호가 남겨놓은 저녁 밀밭 길에 앉아 절망적인 하늘을 바라보다가 카프카가 남겨놓은 성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했다.

 

11.호주머니 속에는 당신의 남루한 방으로 돌아갈 시내 버스 요금밖에는 없고 그리하여 다실의 흐린 조명등 밑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베토벤의 침울한 육성을 들으며 쉴 수 조차도 없었던 날, 정답던 친구 몇 명은 저희들끼리 바다로 떠나고, 더구나 잠시 사귀던 애인마저

  출타하고 없을 때 당신이 그 무엇을 만나게 되는 것은 오직 명료한 고독뿐.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 보아야 당신 홀로 기거하는 방 안 가득 더욱 감당할 수 없는 고독이 자욱한 빗소리로 누적되어 있을 터이고,

  그래서 당신은 차라리 거리에 머물러 좀 더 비를 맞을 작정을 하게 되리라. 점차로 당신의 어깨는 젖어들고 통속한 유행가조차도 눈물겹게 들리면,

  문득 당신은 회상하게 되리라.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당신의 머리 속에서 지워져 버린 이름들을. 그렇다. 진실로 우리가 망각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잠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슴 속 저 알 수 없는 깊이에 방치해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홀로 쓰라림을 맛보는 시간에 새삼스럽게 찾아내어 보게 될 뿐이다.

 

12.극도의 외로움은 과연 인간의 마음까지를 눈멀게 한다.

 

13.그 즈음에는 밤이면 자주 심한 바람이 불었다. 방안에 가만히 누워서 귀를 열면 바람은 모든 것들을 펄럭거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벽도 펄럭거리고 천장도 펄럭거리고 방바닥도 펄럭거리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그리워지곤 했다. 꼭 누구라고 집어 말할 수는 없고

  그저 막연하게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14.아, 나는 얼마나 오랜 나날을 외로운 실종 속에서 비 맞으며 살아 왔던가.
 

 

 

 

 

 

노을의 끝자락을 잡고 못내 아쉬운 여인...

놓을 줄 알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것을...

 

노을이 다 지고서

어둠이 깔리듯

맘속에 짙게 깔린 이 어둠을

어떻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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